볏단들에게 설교하던 소년의 꿈/ 안희환목사 기독교싱크탱크 대표
중학생 시절 40분 정도 논길을 걸어 학교에 가야 했는데 설교자가 꿈이었던 저는 논에서 쭉쭉 자라고 있는 벼이삭들을 향해 설교 흉내를 내곤 했습니다.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벼 이삭들은 제 설교에 아멘 하고 화답하는 것 같았습니다. 수확 이후 논에 세워놓은 볏단들 역시 제 설교 연습의 청중들이었습니다. 비록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만 이루어진 저의 어설픈 설교였지만 제게는 그것으로 족했습니다.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제 속에 불이 붙는 것 같았습니다.
고등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제가 배치 받은 반으로 갔을 때 낯선 학생들 틈바구니 속에서 저는 어색함을 느꼈습니다. 그러다가 텔레비전을 통해 예배 방송이 나왔습니다. 미션 스쿨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오시기 전 예배 방송이 나온 것이었습니다. 아이들은 방송이 나오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교실은 온통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요란했습니다. 그 와중에 저는 다른 아이들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예배에 집중했습니다. 찬송을 큰 소리로 따라 불렀습니다. 이상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. 제가 너무 사랑하는 예수님께 찬양 드리는 것이었으니까요.
담임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시다가 찬송 부르고 있는 저를 눈여겨보셨습니다. 교무실로 오라고 하셨습니다. 그러더니 절 보고 부반장을 하라고 하셨습니다. 반장은 학급 업무를 주로 하고 부반장은 신앙 업무를 주로 하는 역할인데 절 보고 부반장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. 부반장이 하는 주된 일은 선생님이 오시기 전 반 아이들과 함께 경건회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. 저는 그 일을 기쁨으로 했습니다. 전교에서 경건회가 가장 잘 진행된 반은 제가 부반장으로 있는 반이었고 아침마다 간단하게 설교하는 것은 제게 큰 기쁨이었습니다.
드디어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하였고 저는 신학생이 되었습니다. 아직 어리기만 했던 저의 모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담임목사님께 전도사를 시켜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. 전종수목사님은 대학 2학년 때 제게 교회학교를 맡겨주셨고 3학년 때는 학생회를 맡겨주셨습니다. 이제 20대 초반 밖에 안 된 저였지만 정말 열심히 기도하며 말씀을 전했습니다. 그 당시 제 설교는 지금 만큼이나 길었습니다. 학생회 설교에 50분에서 60분 정도가 걸렸으니까요.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전반적으로 말씀을 잘 들었고 설교 후 합심해서 기도를 시키면 기도에 불이 붙곤 했습니다.
교회 설교 사역과 함께 대외적인 설교 사역도 열리기 시작했습니다. 처음에는 방학 때 학생회 수련회 등을 중심으로 강사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. 저는 저 자신이 모자라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사로 나가는 것을 거절하지는 않았습니다. 강사로 일단 수락을 해놓고 기도에 더 집중했을 뿐입니다. 강가로 나간 후에도 말씀을 전하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습니다.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고 방학이 되면 수련회 일정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.
30-40대를 지나가면서 말씀 사역은 청소년이나 청년들을 넘어서 장년들에게로 확장되었습니다. 장년 헌신예배나 부흥회 등에 강사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. 처음에는 교단 내 교회들로 제한이 되었었는데 후에는 교단을 뛰어넘게 되었습니다. 장로교, 감리교, 순복음 교단 등 타교단에서 상사 요청이 계속 들어왔습니다. 초교파적인 연합집회 강사로도 계속 나가게 되었습니다. 심지어는 시 단위의 연합집회 강사로도 초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. 대형교회 목사도 아니요 연륜이 있는 목사도 아니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.
이제는 강사 요청에 비해 제 체력과 시간에 한계가 있어서 다 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. 홍길동처럼 분신술을 익히지 않는 한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없습니다. 과도한 체력 소모로 몸이 자주 아픈 것을 경험하는 상황 속에서 장기전을 위해 일정을 줄이려고 하는데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. 예전 풍동 교회 부흥회 인도 때 찬양 인도자들이 찬양 인도하는 동안 저는 강대상 뒤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때 제게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. 볏단들에게 설교하는 한 소년의 모습이었습니다. 볏단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더니 사람으로 변하는 광경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울고 또 울었는지 모릅니다. 설교자가 되고 싶었던 저의 꿈을 이루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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